국외 영화 리뷰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리뷰, 후기, 해석

뚜따스 2020. 12. 17. 15:25
728x90

(본 포스팅에는 개인적인 해석이 다수 포함되어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레버넌트'는

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가슴을 졸이며 관람을 해야 하는 영화입니다.

 

저는 영화를 다 보고 리뷰하기 앞서,

도대체 무엇부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18세기의 미국 서부 미개척지에서

인디언과 백인들간의 목숨을 대립이 그 무대입니다.

 

'미개척지'라는 영화속 배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굉장히 춥고 온기 하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죽음과 매우 가까운 곳입니다.

유일한 열기라곤 '사람'아니면 '짐승' 뿐입니다.

 

이 와중에 인디언과 백인들은 서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사수하려고 합니다.

 

인디언은 목숨을 걸고 기존 자신들의 영역을 사수하려 하고,

백인들은 목숨을 걸고 그들의 영역을 뺏았고 돈을 벌려고 합니다.

 

인디언뿐만 아니라 백인들도 돈을 벌지 못한다면

죽는 건 매한가지 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 영화에서는 '가죽'이라는 소재가

정말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짐승에게 체온과 열기, 그리고 호흡을 지켜주는 것은 그들의 가죽입니다.

그러나 백인도 인디언도 모두 똑같이 가죽을 필요로 합니다.

 

실제 영화상에서 가죽은 값어치가 굉장히 높은 재화이며

이 가죽을 얻기 위해 미지의 땅으로 백인들은 목숨을 걸고 찾아왔습니다.

 

주인공 '글래스'는 인디언 아내와 혼혈로 낳은

'호크'라는 아들과 같이 다닙니다.

 

글래스와 호크는 이 근방 지리를 잘 알기 때문에

가죽을 채취하는 미군 군대의 고용되어있습니다.

 

과거 인디언 마을에 아내와 머물며 호크를 키우고 있었는데요.

 

영국군의 침략으로 아내를 잃었지만 아들만은 지켜냈습니다. 

이제 아들 호크가 주인공 글래스에겐 전부나 다름없습니다.

 

즉, 아들 호크가 존재함으로 글래스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아들 호크를 죽여버리는 데요.

 

주인공 글래스가 회색곰의 공격을 받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죽음을 바로 앞둔 극단적인 상황에서 말이죠.

 

이 영화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매우 흐릿합니다.

 

사실 영화 속 대부분의 상황들은 '죽음'으로

정의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글래스가 보는 아내에 대한 판타지는

그가 얼마나 죽음과 맞닿아있는지 보여줍니다.

 

그런데 글래스를 죽음에서 삶으로 이끌어 당겨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아들 호크를 죽인 '피츠제럴드'에 대한 '복수심'입니다.

 

복수심은 처절하고 지독하게 살아남게 하는 힘을 부여합니다.

 

물 한 모금, 풀 한입, 물고기 한 마리, 그리고 고기 한 덩이 하나하나가 복수심의 단편이며

죽음에서 삶으로 역순 하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영화 내내 이런 죽음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과정들이

정말 너무 섬세하게 연출되어 경외심마저 들게 합니다.

 

한편, 내면적으로는 과거 습득한 인디언의 '가치관'이 주인공을 되살리는 두 번째 힘이기도 합니다.

 

도중에 만난 외톨이 인디언이 그를 살려준 이유도

그의 모습에서 인디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외톨이 인디언의 마지막 치료와, 그의 말 육체 안에서의 시간은 

주인공에게 새로운 탄생을 완성시켜줍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인공이 말의 육신 안에서 나오는 이 장면도 역시

'가죽'이라는 껍데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을 경험하고 살아 돌아왔다는 것은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악역 피츠제럴드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과거 그는 인디언들에게 붙잡혀 자신의 머리가죽 절반이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자신의 머리가죽 절반을 잃었던 기억은

그에게 죽음을 이겨낸 기억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에 압도당한 기억입니다.

 

이점에서 주인공과는 많이 다르죠.

주인공이 이길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짚고 꼭 넘어가야 할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 장면인데요.

 

마지막에 주인공 글래스는 피츠제럴드에 대한 복수의 완성에 다 달았을 때,

 

물 건너 이족 인디언 추장을 발견하고, '복수는 신의 뜻'이라 혼잣말로 되새기며

피츠제럴드를 물에 던져 인디언 쪽에 흘려보내 버립니다.

 

그리고 이족 인디언 추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 피츠제럴드를 대신 죽여버리고,

적대 세력이자 백인인 주인공 글래스를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이 장면 역시 주인공이 인디언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이족 인디언 추장이 알아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족 인디언 추장은 영화 내내 항상 그를 죽이려 했었는데요

사실 이건 백인들의 가치관과 행동을 흉내 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백인들이 모은 가죽을 훔치고,

그 가죽으로 백인들과 협상을 하여 말을 구하고,

또한 생명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는 행동들은

사실 백인들의 행동입니다.

 

도저히 본래 인디언의 가치관과 행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족 인디언 추장은 백인들에게 뺏긴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서

 잠깐 백인들의 행동을 따라 했던 것이죠.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 글래스와 인디언 추장은

서로 백인의 가치관을 접어두고, 인디언의 가치관 및 행동을 회복합니다.

 

이족 인디언 추장은 딸을 구하고 다시 인디언으로 돌아갔고,

주인공 글래스도 복수를 완성하고 다시 인디언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주인공과 인디언 추장이 서로 교차하는 장면은

서로 과업을 완수하여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곧 주인공 아내의 환영도 곧 그를 떠나게 됩니다.

 

결국 영화 속의 모든 사건들이 모두 '신의 뜻'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열기조차 없는 혹한의 자연환경에서는

생명이란 그저 굉장히 미미한 것일 뿐입니다.

728x90